소쉬르는 언어기호를 모델로 한 언어 중심의 기호학 계보를 세웠다. 그에 비해 다양한 기호를 여러 가지 관점에서 정리하고, 인간을 비롯하여 동물이나 여타 생물이 사용하는 모든 기호 종류의 분류를 시도한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20세기의 기호학에 있어서 소쉬르와 다른 또 하나의 계보를 만들어낸 미국의 철학자이자 논리학자인 찰스 샌더스 퍼스(PEIRCE, Charles Sanders, 1839~1914)이다.
퍼스는 소쉬르와 동시대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의 연구에 대하여 알지는 못했다. 그러나 같은 시대에 두 학자는 각각이 ‘기호학’ ‘기호론’이라는 것의 의미에 대한 일반학을 제창했다.
퍼스가 제창한 것은 ‘기호론’이었다. 그가 생각한 기호론은 언어를 모델로 한 소쉬르 스타일의 기호이론이 아니라, 인간과 다른 많은 생물들 또는 우주의 온갖 현상 전체를 기호 프로세스로 취급하려는 대단히 보편적인 기호론이자 범기호론이다. 퍼스에게 있어서는 인간 자체도 하나의 기호현상이었고, 우주란 기호에서 기호로 현상이 계속하여 이동하는 무한 프로세스로부터 성립한다고 생각했다.
퍼스를 그러한 신념으로 유도한 것은 ‘우주전체라는 것은 기호만으로 성립됐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기호들로 충만해 있다’라는 생각에서였다. ‘수학, 윤리학, 형이상학, 중력, 열역학, 광학, 화학, 비교해부학, 천문학, 심리학, 음성학, 경제학, 과학사, 휘스트, 남녀, 와인, 기상학 등 나에게 있어서 기호연구가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퍼스는 말했다.
‘인간이란 기호 프로세스이다’라고 퍼스는 생각했던 것이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나 기호야 말로 인간 자신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고는 기호’라는 것과 ‘생이란 일련의 사고’라는 것이 ‘인간이란 기호’라는 것을 증명하듯, 모든 사고는 외적 기호라는 것이 ‘인간은 외적기호’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과 외적 기호는 homo와 man이라는 말이 동일하다는 의미에 있어서 동일하다. 그러므로 나의 언어는 나 자신의 총체이다. 왜냐하면 나는 ‘사고’이기 때문에’ (퍼스)
사람들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사고라는 것은 말로 성립되기 전의 기호 같은 것의 연쇄로서 파악할 수 있다. 그러한 것이 인간 사고에 있어서 추론의 연속성을 만든다고 생각한다면, 나라는 것은 나의 사고의 연속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인간이란 기호를 사용한 추론 프로세스’라는 것이다.
그리고 퍼스가 사용하는 ‘사고’란 필시 어렵고 논리적인 사고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이나 의식의 작용을 뜻한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외적 기호’란 말하고 쓰기 위한 언어기호나, 실제로 종이 위에 그려진 이미지나 그림과 같은 구체적인 기호를 말한다.
인간은 글을 쓰지 않거나 말하지 않을 때에는 기호를 사용하여 반쯤 무의식 상태에서 추론을 행한다. 인간의 활동이란 기호에 기반한 지각, 인지, 추론의 연속적인 프로세스를 의미한다. 인간과 생물 일반을 기호에서 기호로 끊임없이 해석 활동을 하는 프로세스로서 파악하려 한 것이 퍼스의 생각이었다.